...(중략) 전시 부제인 '새벽 4시'는 문학가 이상이 1932년에 '비구'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단편소설 "지도의 암실"에서 소설 속 주인공이 새벽 4시에 잠들며 자기 자신, '리상'을 만나는 순간을 모티브로 한다. 즉, '새벽 4시'는 물리적인 시간을 의미하기 보다는 새로운 차원의 공간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을 의미하는 하나의 메타포이다.
새벽에 불을 켜둔 채 잠이 든 '리상'은 상상인지 현실인지 구분되지 않는 풍경과 시간을 유영하며 극장도 가고, 동물원도 가고, 화장실도 간다. 하루 일과를 가상의 지도 위에서 보내는 것이다.
미디어 환경 속 현대인의 삶을 가장 직설적으로 반영하는 이미지는 밤과 빛, 그리고 그 안에서 다중적으로 활동하는 자아라고 할 수 있다. 훤하게 형광등을 켜두고 새벽 4시에 잠자리에 드는 1932년 '리상'의 방. 불을 다 끄고도 컴컴한 방에서 눈부신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면서 페이스북에 체크인을 하고, 유튜브에서 뮤직비디오를 플레이하고,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속 사진들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2014년의 방. '리상'이 잠자리에 들며 그리던 가상의 지도, 곧 '지도의 암실'은 온르날 우리에게 현실이 되었다.
가상과 현실, 진짜와 가짜, 너와 나 시공간이 혼재하는 새로운 세계에서 뒤섞인 이미지와 텍스트들은 오늘날 뒤섞인 그 존재 자체로 이미 다른 층위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 혼돈의 공간 속에서 현대인들은 유영하며 연유 모를 소외감과 연대감을 동시에 느끼곤 한다.
본 전시는 이렇듯 어느 한 쪽으로 규정할 수 없는, 혹은 이미 규정이라는 과정이 무의미해진 모호한 자아, 기억, 풍경, 그리고 부유하는 이미지와 정보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제안하고자 한다.
기인 동안 잠자고 짧은 동안 누웠던 것이 짧은 동안 잠자고 기인 동안 누웠었던 그이다.
네 시에 누우면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그리고 아홉 시에서 열 시까지
리상 - 나는 리상이라는 한 우수운 사람을 안다. 물론 나는 그에 대하여 한쪽 보려 하는 것이거니와, - 은
그에서 그의 하느 ㄴ일을 떼어 던지는 것이다.
태양이 양지쪽처럼 내리쪼이는 밤에 비를 퍼붓게 하여 그는 레인코트가 없으면
그것은 어쩌나 하여 방을 나선다.
이상(1932). "지도의 암실". '이상 소설 전집' 민음사. 2012. p7